본문 바로가기
세상사연

시어머니 지병 있는 것도 속이고 결혼 일주일 만에 병원 모시고 다녀라 시누이 유학 생활비 더 보내야 하니 내 월급 달라는 남편

by 배꼽사연라디오 2024. 10. 5.
반응형

 

 

 

 

 

 

 

 

 

 

 

 

☕결혼 석 달만에 이혼한 사연

 

하나에서 둘이 되어도
 행복하지 않은 결혼이라면 
다시 혼자가 되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으로 
헤어지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남편의 어떤 배경도 가진 것
 하나 없어도 성실하고 착한 마음
 그거 하나 보고 결혼했는데,
연애와 결혼은 다르다는 경험자들의 
말을 저도 실감했네요.


남편은 홀시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제가 결혼할 당시 여동생은
 나이 차이가 있었고,
대학 졸업 후 유학을
 준비 중이었죠.
동생 유학 때문에 결혼에
 큰돈을 쓸 수 없으니 
간단하게 하자고 하더군요.


힘들게 하지 말고  결혼을 미루자
 몇 년 더 모아서 해도 된다고 해도
 남편은 결혼을 서둘렀습니다.
그땐 알지 못했죠.
시어머니가 지병이
 있으시다는 것을 말이죠.
저를 속이고 결혼을
 서둘렀던 이유는 오직 
시어머니 때문이더군요.


저를 사랑해서가 아니고 
자신의 가족을 위해 생각해 
낸 것이 희생양을 찾는 것이었고, 
그 덫에 제가 걸린 것이었습니다.
혼자 힘으로 감당하기 
힘들어서 같이 해 줄 여자가 
필요했던 것이죠.


인물이 반반하니 여자가 많이 따랐고,
 그중에 순해 보이고 열심히 사는
 제가 딱 이었던 것이고요.
저는 행복할 거라고, 
사랑하는 두 사람이 결혼해서 살면
 서로 의지하며 더 많은 행복을
 가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는데,
제 믿음은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바로 시어머니 때문에 말이죠.
신혼집은 시누이가 유학을 갔기
 때문에 홀시어머니 걱정하는 
시댁 가까이 구했습니다.
친정아버지가 20평 대
 두 사람이 살기 좋은 평수로 해주셨고요.
명의는 아버지 명의로 그냥 두었었습니다.
우리가 돈을 모라 이사 갈 때
 공동 명의나 제 명의 하기로 했고요.
그것도 시어머니는 서운해하시더군요.


집은 무조건 남자 앞으로 하는
 거라고 우기셨는데,
친정아버지가 시어머니께
 그건 옛날 고정관념이라고 하시면서 
돈은 우리가 다 냈는데 한 푼 안 낸 
박 서방 앞으로 왜 하느냐
 서운해하실 일 아니고
나중에 둘이 벌어서 이사할 때
 공동 명의 하면 된다고 
못을 박아 버리셨죠.


신혼여행 다녀온 다음날부터
 남편이 부탁을 하더군요.
출근 전에 어머니 아침 챙기고
 퇴근하면서 들러서 
저녁 챙겨 드리고 오라고요.
그게 모슨 말이냐, 
내가 그걸 어떻게 하느냐.
당신이 부탁해서 시댁 근처에
 집을 얻느라 회사 출근 거리가 
내가 더 멀어졌는데, 나는 못한다,
휴일엔 모르겠지만 그건 어려우니 
걱정되면 아들인 당신이 가서 해라
 하고 싫다고 했죠.


그랬더니 바로 화를 내더군요.


"며느리가 됐으면 
시댁에 잘하는 건 당연한 거야.
난 지선이 너가 이러는 모습
 처음 봐서 적응이 안 되네.
우리 엄마한테 잘할 것 같아서
 널 고른 건데 이게 뭐냐? 
다 필요 없고 엄마 챙겨.
몸도 안 좋으신데
 내 동생 시연이도 없고 너라도 챙겨.
나는 새벽에 나가는 사람이잖아."


"나야말로 적응이 안돼.
오빠 이런 사람이었어?
 어떻게 신혼여행 다녀오고
 바로 이래? 결혼 한 달이 지났어
 두 달이 지났어? 우리 결혼 한지
 몇 년 된 사람 같아.
막 합가로 다투고 시댁 일로
 다툰다는 친구들 몇 년 된 
결혼 생활 듣는 것 같아.
내 친구 중에 제일 빨리 결혼한
 친구도 이제 3년 됐지만, 
시댁 문제로 다투는 건 
김장이나 제사 정도야.
그런데 나는 시어머니
 식사 챙기는 문제로 벌써 
이래야 하는 거야? 난 못해.
언제 여기 와서 아침 챙겨 드리고
 출근 준비하고 한 시간 
거리를 가느냐 말이야.
오빠는 20분 거리지만
 난 한 시간이나 걸려.
8시까지 출근이면
 새벽 4시엔 여기 와야 해.
저녁에 퇴근하면 8시야.
어머니가 그때까지 
기다리실 수 있어?
 밥 하면 아홉 시는 된단 말이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 
내가 생각이란 걸 하지."


신혼여행 다녀온 다음날부터
 다투기 시작한 우리는
 매일 싸웠습니다.
시어머니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끝없이 다툴 것 같았죠.


신혼을 즐겨야 할 우리는 
시어머니 걱정으로 오직 
머릿속에 자기 엄마만 생각하는
 남편에게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평일엔 자주 못 갔지만 
주말과 휴일엔 시댁에서 살다시피 했죠.
시어머니 잔소리도 심하긴 하셨는데,
 참고 넘겼습니다.
그 정도는 하자 생각하고 참았으니까요.
온통 불만인 시어머니의 아들 대신
 며느리가 효도 하는 거라는 
당연한 논리는 참 힘들긴 했습니다.
그러다 일이 터졌고요.


바로 유학 간 시누이 돈 문제였고, 
시어머니의 지병이었죠.
전 몰랐으니까요.


"어머니 모시고 병원 다녀와야 하니까
 시연이가 하던 거 이제 지선이 네가 해.
다음 주 화요일이니까
 오전에 잠시 외출해서 모시고 갔다 와.
병원이랑 가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 줄게."


"어머니 어디 편찮으셔? 
나한테 그런 말 없었잖아? 
어디가 편찮으신 건데?"


어머니가 고생하시고 사셔서 
온갖 병을 다 달고 사셨더군요.
수술도 한번 하셨고 
고혈압으로 쓰러지기 
까지 하셨다고 했습니다.
덩치가 좀 있으신데 
살을 빼셔야 하는데 
살을 못 빼시고 더 드시기만 해서
 남편이 힘들어했고요.


음식에 대한 식탐이 많으세요.
친정에서 가져온 김치며 
밑반찬이 다 시어머니 
집 냉장고로 가 있거든요.
남편이 다 갖다 줍니다. 
우리가 먹을 시간이 있느냐
 하면서 말이죠.


그걸 갖다 드리면 보통 가족이면
 일주일 넘게 먹을 양인데,
 이틀이면 다 털립니다.
그래서 저는 장도 잘 안 보고
 친정에 반찬 해 주시는 것도 거절했어요.


시어머니 드릴 반찬이면
 친정 엄마가 왜 고생해서 하시게 하나요?
친정 엄마는 딸 고생하지 말라고
 해 주시는 건데 말이죠.
거기다 저한테 병원까지
 모시고 다니라고 하면.... 
갈수록 태산이었네요.


"나는 출장이 있어서 못 가. 
그래도 넌 회사에서 자유롭잖아.
나보다 지선이 니가 
편하게 움직일 수 있으니까 
니가 하라는 거지.
아니면 회사 그만두고
 우리 엄마 챙기던가."


"뭐? 회사를 그만두라고? 
그게 말이 돼?
내가 그 회사를 어떻게 들어갔는데?
 대기업 보다 대우도 더 좋고 
내가 오빠보다 월급도 더 많아.
내가 왜 그만두는데? 
어머니 병원 얼마나 자주 가야 하는 건데?
수시로 가야 하는 거면 도우미를 써.
그 돈은 내가 낼게. 우리는 일하는데 
어머니 챙길 수 없잖아.
현명한 방법을 선택하는 것도 중요해.
내가 며느리라고 다 할 수는 없어."


"그건 차차 생각하고. 
지선이 너 정확하게 얼마 버니?
 내가 니 월급까지 관리하면 안 될까?
우리 시연이 유학비도 더 보내야 하고 
어머니 생활비며 내 월급으로는 좀 벅찬데, 
니 월급 내가 관리하면서 
같이 나눠서 부담 좀 하자."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내 월급을 관리하겠다니? 
아가씨 유학비 보탠다고 해서
 나 오빠한테 생활비 한 푼 안 받기로 했어.
그거 양보했잖아.그런데 얼마를 보내길래
 더 보낸다는 거야? 
어머니 생활비는 얼마며,
 왜 오빠 월급으로 안되는 건데?
월급 오백만 원이 적은 거야?
 우리 생활비 내 월급으로 쓰기로 했고,
관리비며 우리 생활비며 
다 내 월급인데 그걸 시댁에 보태겠다고 하면 
우린 어떻게 돈을 모아?
아무리 집이 있다고 해도
 아이 낳고 살 생각하면 돈을 모아야지."


"당장 우리가 나갈 돈도 해야 할 일도 없잖아.
며느리가 됐으면 시댁을 먼저 챙겨야지.
시연이는 유학 2년이니까 그동안만 보내면 돼.
가서 있어보니까 돈이 더 필요한 것 같아.
그래서 백만 원은 더 보내야 해.
지금 보내는 걸론 너무 모자란다고 
투덜거려서 말이야.
어머니 병원비도 더 필요하고
그래서 네 도움이 필요해."


"오빠 진짜 너무한다.
우리 결혼 한지 얼마나 됐다고 
이런 걸 나한테 부담 주는 거야? 
아무리 내가 오빠 아내이고 
며느리가 됐다고 해도 이건 아니지.

 아가씨 유학 생활비도 그래.
나는 뭐 유학 안 갔다 왔어?
 왜 그런 돈이 필요한데?
 더 필요하면 본인이 알바라도 해서 쓰라고 해.
나는 친정이 부자라도 용돈은 벌어서 썼어.
지금도 삼백만 원을 보내고
 보너스 받으면 목돈 보낼 거라면서
 백만 원을 더 보내자고?
오빠 월급에서 사백만 원을 보내면 
어머니 생활비 백만 원에 
병원비에 이미 한도 초가네.
그래서 내가 필요했던 거야?
 내 월급이 필요해서? 
오빠 가족 챙기자고
 나를 희생하라는 거야?
우리 생활은? 우리 미래는? 
왜 내가 오빠 가족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건데?
난 혼자보다 둘이면 더 행복할 것
 같아서 결혼한 거야.
결혼하자마자 이렇게
 힘들 줄 알았으면 나 결혼 안 했어.
내가 순해 보여서 선택했다고?
 내가 시댁에 잘할 것 같아서 고른 사람이라고?
그 말 듣는데 화가 났지만 
결혼했으니 참으려고 했어.
오빠 월급은 없어도 내 월급으로

우리가 살 수 있으니까 이해하려고 했어.
그런데 내 월급까지 시댁에 주면?
 우린 뭐 먹고살아? 
손가락 빨면서 살 거야?
이런 불행한 결혼에 
왜 나를 끌어들인 건데! 
나한테 서운하다고 말하지 마.
누가 들어도 서운한 사람은 나니까.
어떤 부모가 불행한 게 보이는데, 
앞날이 훤한데 결혼하라고 하겠어?
어떤 여자가 그걸 알고 결혼하겠느냐고!
후회된다 정말! 내 돈이 필요한 거면 
지금이라도 그만 두자. 어머니 모시자

 할 거고 시누이 다 챙겨야 할 거고

난 그렇게 못 살아.
오빠와 결혼해서 아이 낳고 행복하게

살려고 꾼 소박한 꿈이 다 필요 없게 됐네.
난 결코 큰 욕심 안 냈는데, 
오빠는 나한테 아주 큰 욕심을 내고 있었네.
난 그런 희생하며 살고 싶지 않아.
미래가 없는 결혼을 이어 갈 필요가 없지.
친정에 갈게. 집에서 짐 싸서 나가.
가서 다 말씀드릴 거니까 이만 정리하자."


한바탕 싸우고 친정에 와 버렸습니다.
신혼집에 갈 필요를 못 느꼈거든요.
혼인신고도 아직 안 했고, 
결혼식부터 신혼여행 다녀온 이후
 석 달 만에 다 이루어진 일이라
 더 미루고 싶지 않았습니다.


초고속 이혼이 된 거죠.
혼인신고 안 했어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우리 결혼합니다 알리고
행복하게 살겠다고 다 보여드렸는데, 
허무하고 씁쓸하고 후회가 됐습니다.


그런 사람인 줄 알았다면 
결혼 안 했을 겁니다.
온통 자기 집 걱정으로 사는 사람인데,
 제가 들어갈 틈이 어디에 있겠어요.
저는 그냥 자기 엄마 모시고 
여동생 도와주고 남들 살듯이 결혼하고
 살 여자가 필요했던 거라는 걸
 결혼 석 달 만에 알았네요.


이후 집은 아버지가 월세 놨고,
 남편 짐 다 빼 버리고 혼수는 팔아버렸죠.
아버지는 인생 공부했다고
 생각하고 잊어버리고 앞만 보고 
살라고 해 주셨네요.


더 행복해지려고 한 결혼이
 다른 사람으로 인해 불행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본 순간
결혼은 부부만 맺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 맺어지는 것이라는
 어른들의 말씀이 뼈에 새겨져
앞으로는 절대로 사람 만날 
생각을 못할 것 같네요.


결혼 한번 해 봤으면 됐죠.
저를 위한 인생을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둘이 아닌 혼자 말이죠.
두 사람이라고 더 행복한 거
 아니니까요.
결혼을 하면 더 행복해질 거라는
 분들이 제 사연을 보고 
잘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이혼도 많은 요즘 제 주변 지인들도
 이혼이 대수냐 다들 이혼하고
 잘만 산다 위로해 주시네요.
왜 이렇게 이혼이 많은지
 이제야 이해가 됩니다.


저도 이혼한 친구 위로보다 
응원해 주러 가야겠네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배꼽사연-the story

좋은 이야기 나누려고 합니다. 실화 사연을 각색하거나 커뮤니티 사연을 각색해서 영상을 제작합니다. 사연 중에 일부는 상담 실화라 가명으로 제작한 것입니다. 상담 사연이 대부분인 경우라

www.youtube.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