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편이 집을 떠나 동거한 이유
용서는 어떤 관계에서도
사랑의 최고 형태라고 믿는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강한 사람이며 용서하는 사람은
더욱더 강한 사람이다.
[욜란다 하디드]
(미국의 모델 출신 방송인)
아들이 여자친구를
집에 데리고 왔습니다.
맛있는 거 많이 했다고
자랑을 했네요.
오랜만에 아들과 편안하게 앉아
식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맞은편에 손자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계시는 시아버지가 계시고요.
남편이 함께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들이 7살이 되던 봄에
사고로 먼저 떠났습니다.
이후 혼자 아들을 키웠고요.
1년 전 그동안 잊고 살았던
시아버지를 뵈었습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정리하고 싶다며
손자를 데리고 집으로 오라고 하셔서
아들을 데리고 처음으로
할아버지 집에 갔습니다.
아들이 많이 놀라더군요.
할아버지가 살아 계셨느냐
가족은 왜 가만있는 줄
알았다고 하면서
왜 엄마는 왕래 없이 사셨느냐
많은 것을 묻더군요.
그 사연 함께 하려고 합니다.
이제야 지난 시간을 용서하고
남편을 보내야 했던
그때의 일을 용서라는 말과
함께 지우려고 합니다.
용서는 이미 했지만
아들을 생각하며
다시 한번 용서와 함께
아들에게 가족을 찾아주었네요.
이젠 제가 아들에게 용서를
받을 차례가 되었으니까요.
저와 남편은 대학에서 소개로 만났습니다.
전공도 다르고요.
그 시절 시골에서 대학을 가는 건
돈이 있어야 가는 곳이라고
부모가 돈이 좀 있지 않으면
가기 힘들다는 말을 했죠.
농사를 지으셨지만 아버지는
우시장에 일하셨고
돈을 더 버실 수 있으셨죠.
어머니는 여자라도 배워야 한다
머리가 좋으니 뭘 해도
잘할 거라고 하시면서
사범 대학을 보내 주셨죠.
그곳에서 만난 사람이 남편입니다.
친구로 지내기로 했지만
남편은 처음부터 저를
좋아했다고 했다. 니다
첫눈에 반했다고 하면서 말수도 적었고
사람 앞에 서면 떨려서 말을 잘 못해
고백이 늦었다는 남편은
첫사랑인 저를 세상 제일
귀한 사람처럼 대했습니다.
그게 늘 고마웠죠.
늘 수수한 차림으로 다녔기에
남편 집안이 부자인 줄
전혀 몰랐습니다.
부자도 그런 부자가 없더군요.
태어나서 그렇게 으리으리한
3층 집도 처음 봤고
대리석 집도 집안에 온통 그림으로
쌓여있는 것도 처음 봤네요.
서울 자체가 시골에서 태어나
산 저에겐 감당이 안 되는 도시였는데
남자친구의 집을 보고 이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
처음 알았습니다.
드라마에서 평창동입니다.
사모님 사모님 하던 게
진짜인 걸 보게 된 거였죠.
그다음은 두려움이 밀려왔고요.
남자친구가 군대를 갔다 오고
사회생활을 하기까지 기다리면서도
참 편하게 봤는데
맛있는 집밥 먹여 준다고
처음 집에 놀러 가자며
저를 데리고 가서 본
남자친구의 집은 그랬습니다.
제가 중학교 교사로 부임한 이후
혼자 도시에서 열심히 사는
제 모습이 안쓰러웠든지
집밥을 먹여주겠다고 데리고 간 날
저는 밥도 못 먹고 그 집을 나왔습니다.
간 날이 장날이라고 남자친구
집에선 모임이 있었고
여자친구라고 데리고 온 저는
참 초라한 모습으로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 가운데
발가벗겨진 사람처럼
웃음거리가 됐습니다.
화려한 모임에 어울리지
않는 차림이었으니까요.
남자친구가 모임인 줄 몰랐다고 했고
저는 괜찮다고 말한 뒤
그 집을 바삐 빠져나왔네요.
서둘러 남자친구 집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이대로 다신 돌아오지
않을 마음으로 말이죠.
이후 저는 남자친구의
연락을 받지 않았고
학교로 찾아와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만나주지 않자
학교 안으로 직접 찾아왔고
어쩔 수 없이 근처 커피숍에서
이야기를 하게 됐죠.
"나 왜 피해?
우리 집에서 먼저 간
이후 계속 나 피하잖아.
그럼 내가 어떻게
될 줄 뻔히 알면서 이래?"
"도망이라고 해도 좋아.
내 마음도 알고
그래서 멀리 가지 않으려고 해.
더 가기 전에 멈춰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넌 나를 떠날 생각이 없잖아.
그럼 결혼하자고 할 텐데.
내가 그 집에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그날 봤지?
난 거기서 일하시는 분들보다 초라했어.
옷을 말하는 게 아니야.
습관을 말하는 거야.
분명히 내 부모님은
이런 나를 싫다고 하실 거야.
서로 상처받지 말고
지금 멈추자. "
"안 돼. 절대로 안 돼.
아직 부딪혀 보지도 않고 그런 말을 해.
내가 그랬지? 난 자신 있다고.
만약 우리 결혼 허락하지
않으시면 집 나올 거야.
그러니까 나만 믿고
내 옆에 꼭 붙어 있어 줘.
부탁이야. 나한테 사랑은
너밖에 없을 예정이니까.
나 평생 홀아비로
늙어가게 하고 싶으면
어디 나 혼자 저 외로운 집에 두고 가봐.
난 우리 집이 정말 싫어.
두 분은 돈 버는 것밖에 모르시고
돈이면 다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이셔서
너무 싫어.
저기서 나 좀 구해줘.
나 대학 다니는 것도
정말 싫었어. 알잖아.
그런데 너 때문에 이겨낸 거야.
그러니까 네가 나 책임져.
사람 하나 살린다고 생각해."
"피... 그게 뭐야? 협박해?
사랑하니까 꼭 붙어있어라.
나 정말 두려워.
집에 놀러 간 것뿐인데
벌써 이러면 결혼 허락
받으러 갔다 간
나 심장마비 일으킬 것 같아.
솔직한 내 마음이야.
나랑 결혼할 건 맞지?
그것 봐. 네 마음도
나 떠나기 어렵다고 알겠지?"
며칠 뒤 남자친구와 다시 집에 갔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아무 반응도 없으셨죠.
그냥 손님이 왔다 가는 정도로
생각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참 불편하더군요.
그 뒤로 몇 번 더 갔지만
한 번도 반갑게
맞아주지 않으셨습니다.
일곱 번째 간 날 처음으로
남자친구 아버지가 저에게
직업이 뭐냐고 물어보셨죠.
그동안 남자친구와 대화도
한 번도 없었다고 하시면서
친구라고 하는데 직업이 뭐냐고요.
그래서 중학교 교사라고 했습니다.
직업은 괜찮네 이 정도셨고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그게 마지막으로 그 집에 간 날이 됐고
더 갈 일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손자를 보고
싶다고 하셔서 이 집에 오게 된 게
그날 이후 처음이었습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다녀간 날
남자친구는 아버지와 다퉜고
결혼할 생각이면 다 포기하고
집을 나가라고 했다고 했습니다.
남자친구는 옷 가방 하나 들고
제가 사는 방으로 왔더군요.
깜짝 놀랐지만 집에서 쫓겨났다면
서 갈 데가 없다고
여기서 시작하자 하길래
어쩔 수 없이 우린 동거로 시작해
혼인신고도 하고
시댁은 허락받지 못했지만
친정부모님이 허락해 주셔서
결혼식도 올렸습니다
시골 농협회관에서
아버지가 부탁해
친구분들과 친척 도움으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저를 존중해 준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죠
남자친구는 결혼식 이후
선배의 소개로 한 회사에 입사했고
그곳에서 영업팀에서 근무하게 되었죠.
결혼 2년 만에 저는 임신을 했고
건강한 아들을 낳았답니다.
남편은 너무 좋아했죠
둘이 모은 돈과 친정아버지가
주신 돈으로 작은 아파트를 사서
이사도 했습니다.
이렇게만 행복했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우리는 아무 걱정도 없는 듯 살았습니다.
그런데 가끔 혼자 앉아있는 남편이
먼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걸 보면
부모님이 그리워 그런가 싶어서
혼자 집에 다녀오라고
말한 적도 여러 번인데
남편은 절대 갈 일 없다고 하더군요.
그러던 남편이 친구에게 들은 소식이라며
시어머니가 건강이 많이
좋지 않다고 했다고 하면서
병원에 자주 가시고
입원도 하셨다는 말을 듣고
한 번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그때 아들 사진도 보여드렸고
잘 살고 있다고 걱정 마시라고 했다고
저한테 말해줬습니다.
어머니가 많이 미안해
한다고도 했고요.
아버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너를 보냈다고 하시면서
아버지께 잘못을 빌고
만나는 게 어떻겠느냐
말씀하셨다고 하는데
남편은 거절했다고 했습니다.
그 집은 늘 외로웠다고
그런 곳에 다신 가고
싶지 않다고 말이죠.
늘 부모님이 일하시느라
혼자 지내야 했던 남편은
형제도 없이 너무 외로웠다고요.
부모님 가슴에 못 박은 건 맞지만
부모님도 똑같이 자식 가슴에
대못 박으셨다고
남편은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죠.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남편이 결혼 7년이 되던 해에
영업을 나갔다가
직장 동료와 같이 타고 가던 차가
대형 트럭이 신호 위반을 하고 가면서
치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고 들었습니다.
병원으로 달려갔을 땐
다 부서진 모습의 남편만
흰 천을 덮고 누워 있었네요.
친정부모님도 올라오셨는데
정신을 놓은 저 대신
손자를 돌봐 주셨고
사위 장례도 다 치러 주셨네요.
어떻게 장례가 끝났는지도
모를 정도로 저는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남편이 죽었다는 것을
절대 절대 믿을 수 없었으니까요.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두고
어떻게 먼저 갈 수가 있나요.
절대 그러면 안 되는 거죠.
며칠을 굶어 저는 힘이 들었죠.
세상이 다 싫어질 만큼
살아있는 제가 싫었습니다.
그런데 저를 보며 아무것도 모른 채
웃어 주는 아들을 보니
정신을 차려야 했죠
친정 부모님이 당분간
시골에 가서 지내자고 하셨지만
학교 생활을 놓을 수 없어서
그냥 잘 지내보겠다고 말씀드렸네요.
아버지가 먼저 내려가셨고
친정엄마가 한 달 정도
더 계시다가 내려가셨죠.
저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예전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아들을 돌봐 주시던 옆집 아주머니가
저를 더 챙겨 주셔서
빨리 털고 일어날 수 있었네요.
어머니는 그분 믿고 내려가셨고요.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먼저 간 남편을 생각해서
더 열심히 산 것 같습니다.
아들은 무탈하게 잘 커졌고
원하는 대학에도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여자친구도 생겼고요.
세월이 이렇게 흘렀나
되돌아볼 시간도 없이
제 머리도 어느 듯 흰머리가
듬성듬성 나있더군요.
그 사이 저는 정년 퇴임도 했고
새로운 일도 찾았습니다.
여러 가지로 바쁘게
보내고 있던 저에게
누가 찾아왔더군요.
깜짝 놀랐습니다.
학교에서 송별회를 하고
나오던 마지막 날 찾아온 사람은
남편의 아버지, 시아버지가
보낸 회사 비서였습니다.
회사를 경영하고 계시진 않지만
비서를 통해 저를 만나길 원한다고
건강이 좋지 않다고
소식을 알려왔습니다.
여러 날 망설이다 아들에게
할아버지 이야기를 해줘야
할 때가 온 것 같아 먼저 말을 했습니다.
학교로 찾아왔다면 집에도
찾아올 것 같아서 결정을 해야 했죠.
아들은 그동안의 사연을 듣고
한참을 울더군요.
아버지가 할아버지 때문에
마음 고생한 게 불쌍하다고 울었고
가족을 보지 못해서 얼마나 그리웠을까
그런 아버지 생각에 또 울더군요.
아버지 생각하면 뵙고 싶지 않지만
연세도 많으시니
돌아가시기 전에 한 번은
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어머니도 뵙기 힘들고
마음 편하지 않으시겠지만
찾아오신 이유가 있지
않으시겠느냐고 하면서
편하게 뵙자고 오히려 저를
위로하고 걱정해 줬습니다.
아들과 저는 비서에게 연락해서
뵙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시아버지를 그 오랜 세월을
보내고 다시 뵈었네요.
아흔 살의 연세에도 좋아 보이셨는데
암 수술 후 오랜 시간 건강 관리를 했지만
최근에 다시 나빠지고 있다고 하셨고
오래 살 것 같지 않다고 하시더군요.
이제 찾게 되어 미안하다고 하시면서
손자를 보자 다가와 안으시더니
아들을 다시 보는 것 같다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남편이 죽은 것도 다 알고 계시더군요.
장례식에 아무도 오시지
않았는데 알고 계셨습니다.
시어머니가 보이지 않아
여쭤보았더니 제 남편이 죽고
그다음에 건강 악화로
돌아가셨다고 하셨습니다.
원래 건강이 좋지 않으셨고
제 남편이 죽기 전에 몇 번
어머니가 입원한 병원에 찾아뵙고
온 것도 알고 있었죠.
돌아가셨구나.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아들 소식은 들었는데...
그 당시 집사람이 많이 좋지 않았어.
아들이 죽었다는 말도 할 수가 없었거든.
장례를 갈 수 없었지.
어떻게 가겠어.
내가 내 아들을 버렸는데 말이야.
지 어미는 나랑 달랐지.
아들 때문에 속 끓이다가
병이 더 심해진 거야.
나는 용서가 안 됐어.
한 번도 내 말을 거역해 본 적
없는 놈이 겨우 소 팔고
농사짓는 시골집의 사위로
가겠다고 해서 그래서 싫었어.
이제 후회한들 그놈이
돌아올 것도 아니지만
내가 허락했더라면
그렇게 죽지 않았을 텐데
생각하니까 더 너를 볼 수가 없었어
내 손자가 크는 것도 다 지켜보고 있었지
비서가 사진도 찍어다 줬고 말이야
법대도 가고 잘 크고 있더구나
잘 키웠네
내 아들을 다시 보는 것 같아."
"힘들게 살아본 적 없는
사람이 영업일을 하고
고생하면서 사는 게
저도 마음 아팠습니다.
더 나은 회사에 갈 수도 있는데
그곳이 마음 편하다고
근무하더라고요.
기자가 되고 싶어 했던 사람이라
제가 혼자 벌어도 되니까
신문사에 취업하고
돈이 안 된다 해도 좋아하는
일 하러 가라고 했는데
아빠고 한 집안의 가장인데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그만두지 않았어요.
그게 더 마음이 아팠죠.
어머니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
남편이 여러 번 찾아뵌 걸로 알아요.
그때 받아 주셨더라면
지금 다른 인생을 살고 있지 않을까
원망도 좀 했습니다.
지금은 세월이 흘러서 다 잊었지만
그땐 그게 그렇게 서운했습니다.
죽을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이미 자식 낳고 사는 아들인데
왜 용서가 안 되셨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랬구나. 미안하다.
아들한테 기대가 컸지.
하나뿐인 자식이었으니까 말이다.
혼자 아들 키우며
고생 많이 했겠구나.
그래, 이제 학교 퇴임했다고?"
"네, 저도 늙었죠.
이런 죄송합니다.
건강이 많이 좋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뒤늦게 내가 사과한다고
지난 일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우리 집안에
내가 죽으면 아무도 없다.
아들놈이 나를 이어
사업을 계속할 줄 알았더니
그래서 말인데
네가 손자와 여기 들어와서
사는 건 어떻겠냐?
거절해도 할 말은 없다만
내가 죽으면 어차피 내 재산은
다 내 손자한테 가게 되어 있단다
핏줄이라고는
내 손자뿐이니까 말이다.
회사는 전문 경영인이 하고 있고
걱정할 일은 없어
와 줄 수있겠니?
남은 시간이라도 손자와
지냈으면 하는 게
내 마지막 바람이다
1년이 남았을지
2년이 남았을지 모른다
의사는 늘 조심하고
있어야 한다고 하고 말이야
나도 이제 갈 때가 된 거지
자식 보내고 아내 보내고
내가 너무 오래 살았어.
손자를 보려고 살았나 싶기도 하고
아무튼 너한테 미안하고
결혼 반대했던 거 사과하마.
늦어서 미안하구나."
시아버지는 제 손을 잡고 사과했고
손자인 제 아들의 손을 잡고
사과하셨습니다.
늙고 병든 몸으로
눈물을 훔치시는데
용서해 달라는 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후 저는 아들과 의논한 후
시댁에 들어왔습니다.
퇴임 후 친구 학원 일은
서너 시간만 가서
도와주면 되었기에
종일 아버님과 대화하고
마당에 꽃도 심고
산책하면서 보냈습니다.
가끔 멍하니 하늘을 보시며
눈물을 훔치시는데
그 마음을 알 것 같아
저는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더 수다를 떨곤 한답니다.
세상 이야기하며 나누지 못한
이야기를 서둘러하고 있습니다
남편과 데이트하던 이야기며
어떻게 살았는지
제가 산 이야기들을 하고
학원에서 아이들과
어떻게 지내는지 다 해드립니다.
의사 선생님 말씀이
얼마나 남았을지 모르니
정리하시는 게 좋겠다고 해서
마음이 무겁네요
손자와 이야기하는
시간을 기다리시고
제가 학원에 간 시간은 편지를 쓰고
계시면서 언제 오냐
문자를 띵 하고 날리실
그 마음에 서둘러 오게 됩니다.
아들을 대신해 저와 이야기하고
용서를 구하는 마음으로
손자에게 뭘 해주면 좋으냐
매일 물어보시네요.
변호사가 된 손자를
자랑스러워하시며
회사에 데리고
가시기도 했습니다.
여전히 아버님이 회장이셔서
얼마든지 인사 발령을 하실 수 있어
손자가 회사에
와 주길 바라시지만
제 아들은 배울 일이 많다며
선배들과 함께 근무하고 싶다고
한 범 무법인 로펌에서
열심히 일을 배우고 있습니다.
언젠가 아버님의 회사로
가게 되겠지만
저는 아들의 선택을
존중하려고 합니다.
남편이 원했던 건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이었고
그 일을 못하고 간 남편이
불쌍해 늘 안타까웠거든요.
제 아들이 그런 인생을
살긴 바라지 않습니다.
시아버지도 강요는 하지 않고 계시지만
마음으론 가업을 이어줬으면
바라고 계시네요.
돌아가시기 전까지
남편이 그토록 그리워했던
부모님과의 시간을
제가 열심히 채우려고 합니다.
여보 그곳에서 저 보고 있지요?
당신 대신 제가
아버님 잘 모실게요.
퇴근하는 아들에게 용서해 달라고
그동안 가족에 대해 말하지 못해
엄마가 미안했다고
다시 한번 용서를 구했습니다.
아들이 손 꼭 잡아주면서
다 이해한다고 하더군요.
고맙다고 했습니다.
제가 살아온 삶을
후회하진 않습니다.
다만 남편이 저와 마지막 인사도 없이
그렇게 먼저 가버려서
그리움에 지금도 원망은 합니다.
사고라 인사할 시간도 주지 못했겠지만
마지막이란 게 없었던 현실이
제일 가슴 아팠네요.
너무 그립고 그립습니다.
아버님과 잘 지내는 걸 보고 있다면
질투할까요? 고맙다고 할까요?
남편에게 저를 두고 먼저 간 걸
용서한다고 말하면서
오늘을 닫습니다.
내일 저는 더 밝게 웃으며
아버님과 제 남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아버님의 마지막은 후회하지 않게
지켜 드리고 싶네요.
용서란 말이 아름다울 수 있는 날이
저에게 와서 행복한 오늘입니다.
용서가 쉬운 건 아니지만
용서하고 사세요.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길입니다.
- 끝 -
배꼽사연을 사랑해 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구독과 좋아요는 힘이 됩니다.
좋은 날 보내세요.
진심으로 사랑하고 고맙습니다.
건강 잘 챙기시고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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