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today are tyrants.
They contradict their parents,
gobble their food,
and tyrannize their teachers.
요즘 애들은 폭군이다.
부모에게 대들고
밥이나 축내며 스승을 학대한다.
[소크라테스]
요즘 청년 백수가 청년층 인구
815만 명 가운데 '쉬었음'
청년 44만 3천 명이
차지하는 비중은 5.4%였고
2024년 7월 기준
가장 많은 수준이라고 하더군요.
일할 의사도 없고요.
'쉬었음' 청년 44만 3천 명 가운데
일하기를 원했느냐는 질문에 '아니다'가
33만 5000명에 달했다고 하니
75.6%가 구직 의사가
없었다는 뜻이지요.
제 큰 아들이 그 백수에
오랫동안 속했다가
이제 겨우 알바를 하는 중입니다.
남편과 저는 식당을
평생 운영했네요.
지금도 하고 있고요.
남편을 만난 곳이
바로 식당이었거든요.
시어머니가 하시던 식당을
공부에 관심 없던 남편이
고등학교 졸업 이후부터
시작했더군요.
저는 그 식당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회사에 다니고 있었고요.
저는 전문대를 나왔고
취업해 집에 도움이 되고 싶어
부모님을 돕고 있었죠.
동생이 한 명이라 많은
돈이 필요한 건 아니었지만
아버지가 공장에서 다친 이후로
일하는 시간이 줄어서
도와 드리고 싶었습니다.
회사 회식도 많았고
단골로 간 곳이라
남편을 자주 볼 수밖에 없었죠.
회사 여직원이 많아도
제가 눈에 들어왔다고 하더군요.
7년 사귀고 결혼했습니다.
결혼하면 친정도 돕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서
남편한테 미리 말을 했죠.
괜찮다고 하더군요.
저는 아들을 낳고
회사를 퇴사 했습니다.
이후 남편 식당을 돕기 시작했고요.
그렇게 시작된 일이 평생 직장이 됐네요.
착하고 성실한 남편 덕분에
고생은 안 했습니다.
단골 손님도 많았고
근처 회사에서 많이 오셨기에
돈은 많이 벌었죠.
두 아들을 낳고 딸을 낳고 싶어
임신하려고 해봤는데
더는 아이가 생기지 않았네요.
두 아들은 건강하게 잘 자라 주었죠.
큰아들은 대학 졸업 후
미국으로 어학 연수니 유학이니 하면서
2년만 돈을 보내달라고 하더군요.
공부 하겠다고 하는 아들 그러라고 했죠.
그게 잘못된 걸까요?
큰아들은 미국에 가서
공부를 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저 여자친구가 가니까
따라간 것 뿐이었고
헤어지면서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이후부터 취업도 안 하고
백수로 지냈습니다.
작은아들은 대기업에 취업 했고
지금도 잘 다니고 결혼해서
손자까지 낳았네요.
식당 그만 하세요 하지만 직원도 있고
나이가 있으니 쉬엄쉬엄 한다 했죠.
그런데 큰아들의 반전 인생에
내년엔 큰아들한테
넘겨주고 쉬자 하긴 하네요.
남편도 정리를 하려고
마음 먹은 것 같습니다.
평생 백수로 지낼 줄 알았던
큰아들이 사람 잘 만나 인생을
다시 살게 될 줄 몰랐으니까.
큰아들은 방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서 컴퓨터 게임만 하면서 지냈습니다.
밥 차려 달라, 고기 구워 달라
뭘 그렇게 해 달라고 하는 게 많은지.
식당에 나와서 밥 먹고 가라고
해도 바쁘다며 안 오더군요.
어느 날부터 빚까지 지기 시작했는데,
주식에 코인에 도박은 또 왜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도박으로 경찰서까지 갔다 왔고요.
이후 도박은 안 했는데
주식은 여전히 하더군요.
그렇게 지내길 몇 년 나이만
들어가는 큰아들이 참 미웠습니다.
너 못 챙겨 주니까
독립이라도 해라 했더니
그럼 그 돈을 달라고 하더군요.
남편이 몹시 화를 냈고
부모 자식 연 끊자는 말까지 나왔네요.
"너 지금 뭐 하는 짓이냐?
나이든 엄마를 이렇게 부려 먹어?
어쩌다 이렇게 됐니?
정신 차려! 독립 하라는 건
다신 이 집에 오지 말라는 소리다.
너 안 보고 싶어서 한 말이라고!
아들이 아니라 웬수다 웬수!
니가 지금까지 집에서
가져간 돈이 얼마인 줄 아냐?
내가 너하고 니 동생 비교한 적 있어?
그런데 오늘은 해야겠다.
동생은 대학 다닐 때 아르바이트 하며
지 용돈은 직접 벌어서 썼다.
부모님 식당 하면서 고생한다고.
지금은 대기업 다니면서 용돈도 주더라.
그리고 여자 친구 생겼는데
너 때문에 말도 못하고 지냈더구나.
내가 너 신경 쓰지 말고 결혼하라고 했다.
그러니 이제 집에서 그만 나가거라.
오피스텔 하나 구해 놨다.
너도 게임하고 네 마음대로 지내고 좋잖아.
여자친구 생겨도
눈치 안 봐도 되고 얼마나 편하냐?
주말에 이사해라.
잘 지내면 거긴 네 명의로 해 주마
이게 마지막으로 내가 부모로서
자식한테 해주는 말이다."
"나도 너는 너 이러고
사는 거 못 보겠다
취업할 거 아니면 나가서
네가 알아서 살아라
용돈도 끊을 것이고
아무것도 안 해 줄 거야
이제부터 니 힘으로 살아봐
잘 지내면 아버지가
그 집 너 준다고 하시더라
편의점 같은데 알바라도 해라.
여기저기 서류도 넣어 보고 말이야.
니 동생 다니는 대기업에
생산직 직원 구한다고 하더구나.
그거라도 가봐라.
그래도 대기업인데 어디냐?
제발 뭐라도 할 생각을 해.
그래서 장가는 가겠니?"
아들은 불같이 화를 냈고
못 나간다고 했지만
남편은 사람을 시켜 주말에 짐 싸서
오피스텔로 보내 버렸습니다.
작은아들이 와서 비밀번호 바꿔줬고요.
오피스텔에 가봤더니 짐 정리도 안 하고
더럽게 살고 있더군요.
남편이 주라고 한 천만 원
봉투 주면서 취업 전엔 집에 못 온다고
아버지가 발 들일 생각 말라고
하셨다고 전하고 왔네요.
마음 아픈 것도 없더군요.
처음에나 취업 못해서 마음 아팠지.
그러고 사는 모습 보면서
불쌍한 생각도 안 들었습니다.
제 큰아들이 그렇게 살 줄
상상도 못해 봤네요.
이후 저도 남편처럼 아들과
왕래하지 않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작은아들 상견례를 앞두고
큰아들이 집으로 찾아왔더군요.
비밀번호를 모르니 집에 갔다가
식당으로 왔다고 하면서 서운해 했고요.
왔으니 밥이나 먹고 가라고 했죠.
남편이 왜 왔는지 물었고
동생 결혼 준비로 바쁘다.
결혼식에는 와라 하면서
아들이 왔다고 고기에 이것저것 해서
밥을 챙겨 주더군요.
며칠을 굶은 사람처럼 밥을 먹던
아들이 다시 집으로
들어오겠다고 하는 겁니다.
혼자 지내려니 힘들다고 하더군요.
거기다 돈이 없어서
라면만 먹는다고 하는데 화가 났습니다.
취업할 생각도 취업할
준비도 안 됐던 것이지요.
"언제까지 그러고 살 거냐?"
남편이 화를 내봐도 큰아들은
다시 집으로 오겠다는
말만 하고 돌아갔습니다.
나이 마흔이 되어 가는
아들 뒤치다꺼리를
제가 어떻게 하나요?
남편은 절대로 안 된다고 하면서
이사를 가야 하나 이러더군요.
작은아들 결혼 앞두고
걸림돌이 될까 봐 걱정도 했고요.
남편은 큰 아들에게 문자를 남겼는데
식당으로 밥 먹으러 와라
이건 허락하지만 집에 들어오는 건
못한다고 거절했습니다.
답이 왔는데 그럼 오피스텔 명의를
본인 앞으로 해달라고 했고,
대출 받아 뭐라도 해보겠다고
그건 해 달라고 부탁해 왔습니다.
남편이 한참 생각하다
다시 문자에 명의 바꿔 주마.
그대신 니가 취업을 하던 장사를 하던
그 전엔 왕래는 없다
늙은 부모도 일하는데
젊은 놈이 일도 안 하고
노는 건 못 본다고 하면서
집에 오는 건 거절했습니다.
뒤에 닥칠 일은 모르고
그 오피스텔을 큰아들
앞으로 해 줬네요.
이후 컴퓨터로 하는 사업을
뭐 한다고 전에 듣긴 했는데
게임 하다 만난 여자와
쇼핑몰 인가 뭔가 시작했다가
2억이나 날렸다고 하면서
대출금 못 갚아 집 내놨다고
남은 돈으로 월세로 이사하고
다시 옷 장사를 한다고 하더군요.
그러던가 말던가 알아서 하라고 했습니다.
큰 아들이 처음으로 뭘 한다고 시작했지만
직접 한 것도 아니고 여자 친구가 하겠다고
시작한 쇼핑몰의 돈을 댔다가 다 망한 거였죠.
작은아들 결혼식에 큰아들은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마음 편했네요.
와서 쓸데없는 짓 할까 걱정을 했으니
안 오는 게 도와주는 건가 생각도 했네요.
큰아들이 저러고 있으니 화도 났고요.
한편으로는 동생은
제 할일 잘 하고 사는데
형이 되어 일이 안 풀리면
미안해서 못 왔겠다 안쓰러운
마음도 조금은 들었네요.
작은아들이 신혼 여행에서 돌아온 후
며칠이 지난 어느 날
큰아들이 여자친구라며 데리고
식당으로 인사를 왔군요.
결혼은 하고 싶은데
돈이 없다고 하는 말을 듣는데
속에서 열 불이 올라왔습니다.
그 쇼핑몰인가 같이 하다 망한 여자였고요.
두 사람을 보는데
골라도 꼭 저 같은 여자를 만나서
무슨 짓을 하고 사는 건가 싶었네요.
대화도 하기 싫어 밥 챙겨 먹이고
아무것도 안 하고 노는 두 사람이
뭐 먹고 살려고 결혼하려고 하느냐 했더니
여자 친구가 카페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고,
쇼핑몰은 잘 될 때까지 해보려고
조금씩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럼 결혼식만 올려주면
되는 것이냐 했더니
전셋집을 구해 달라고 했습니다.
남편이 들고 있던 주걱을 던지며
그런 말 할 거면 올 필요 없다고
하면서 돌려보냈습니다.
여자 애가 놀라서 벌떡 일어나더니
큰아들 뒤로 가는데
나이 차이도 많이 나 보였네요.
저 어린 애를 데리고
어떻게 살 것이며 돈도 못 벌고
여자 애가 버는 돈으로
오히려 먹고 살고 있다고 하니
기가 찼습니다.
저만치 가는 아들을 따라가
지 갑에 있던 오십만 원을 쥐어주면서
지금 결혼식은 내가 보기에도
어렵겠다고 아버지 설득해서
전셋집은 준비해 볼 테니
결혼식 없이 살라고 했네요.
석 달 뒤 제가 남편 몰래
전셋집을 구해 줬고
명의는 나중에 애 낳고
잘 살면 해 주마 하고
제 앞으로 해 뒀습니다.
남편도 제가 해줬을 거라고
생각은 했을 겁니다.
미워도 아들이니까요.
어떻게 살겠지 생각은 했는데
여자애가 버는 돈으로 생활하고
오피스텔 뺀 돈으로 쇼핑몰 인가
뭔가 하면서 버티고 사는 것 같았습니다.
1년 정도 조용하더군요.
그래도 큰며느리라고 설에 와서
과일 한 상자 식당에 놓고 가더군요.
"왔니? 뭐 하러 이런 걸 들고 와...
혹시 올까 싶어서 고기랑
전이면 밑반찬 챙겨 놨다
아버지가 잔소리 하시고
뭘 챙겨 주냐 하시지만
저거 주방장 님께 부탁해서
다 만든 거야. 가져 가거라.
그리고 이 돈은 아들한테
말하지 말고 너 혼자 몰래 생활 비로 써.
친정 갈 때 뭐라도 사서 가고...
참, 이제 물어본다.
친정은 너 이러고 사는 거 아시냐?"
"모르세요... 말씀드리기가...
오빠가 결혼식 하면 가자고 해서
아직 못 갔어요.
명절에 원래 잘 안 갔어요.
가도 편하지 않아서 금방 와요.
아빠가 재혼하셔서 가면 불편해요."
"어쩌다 내 아들 같은 놈을 만나서
이 고생이라니... 내가 할 말이 없다.
대학 나와서 저러고 사는 거
부모인 나도 꼴 보기 싫은데
너는 오죽하겠니?
왜 저러고 사는지 모르겠다
나이만 먹고 있구나
네가 외로워서
내 아들을 만난 것 같은데.
일찍 도망 가거라.
만약 애 낳고 살 작정이면
독하게 살고
애 낳으면 그건 내가 도와주마
좋다고 사는 건 내가 못 말린다.
생각 잘 해보고 결정해
아니다 싶으면 애 생기기 전에 가거라
그냥 살겠다고 하면
손주는 내가 책임지마.
돈을 주면 내 아들이
철이 안 들어서 못 줘
생활비 부족할 땐 나한테 몰래 해.
너한테 미안하네...
어린 네가 더 철이든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단다.
저런 못난 아들을 너한테
맡기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제가 잘할게요.
저 어디 갈 데가 없어요.
오빠를 게임 하다 만나긴 했지만
오빠도 외로웠나 봐요.
마음대로 안된다고 하면서
부모님이 자기를 싫어한다고
그래서 더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다 알면서도 저러는 건
회사에 갈 자신이 없대요.
그래서 저랑 쇼핑몰 시작했는데
취업은 못할 것 같아요.
저도 다 알아요.
우리 철 없는 거요.
그냥 의지하고 살기로 했어요.
이렇게 챙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건 500만원이다.
친정에 명절 선물 보내고
생활비로 써라.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전화하고 알았지?
당분간 오긴 힘들 거야.
아버지가 싫어하셔서 말이야.
잘 지내면 용서해 주실 거다.
미워도 자식이잖니
쇼핑몰 한다니
내 아들 부려먹고 일을 시켜 봐
남자가 뭐라도 해야
가족을 먹여 살리지
어디 여자가 버는 돈에
기대고 살아 살길!"
저는 바리바리 싸 보낸다고 보냈지만
며느리가 가는 뒷모습을 보니
짠하고 안쓰럽더군요.
겉모습은 영 아닌 아이로 보이더니
나름대로 생각은 있구나 싶어서
달리 보게 됐습니다.
가끔 안부 문자도 보내더군요.
그러다 작은며느리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게 됐고
축하하고 있는데
큰며느리가 할 말이 있다고 하면서
식당으로 찾아 왔더군요.
작은아들이 동서지간인
두 며느리를 인사 시켰네요.
형님인 큰며느리가
한참이나 어렸습니다.
그래도 작은며느리는
깍듯하게 대하더군요.
작은아들 부부를 보내고
큰며느리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저 임신했어요...
오빠는 일도 안 하고 할 생각도 없는데
아이를 낳아도 될지 걱정이 되어서 왔어요.
아이 생기면 말하라고 하셔서요.
저 이 아이 낳고 키우고 싶어요.
가족이 생기는 게 너무 좋아요.
어머니께 여쭤보려고 왔어요.
저 아이 낳아도 될까요?"
"내가 하나 물어보자
너 이 아이 낳는 것과 내 아들과
사는 게 상관없는 거니?
취업도 안 하고 저렇게 살 놈인데
애 낳고 살고 싶어?"
"네... 오빠가 저렇게 사는 건
보기 싫지만
헤어질 생각 해본 적 없고
아이는... 더 낳고 싶어요.
더 열심히 일해서
아이 키울 수 있어요."
"저런 놈을 좋다고 하니
그건 네 마음이니까
내가 상관할 바 아니지.
그래 아이는 귀한 존재다.
아이는 낳고 싶다고 하니 낳아라
우리 손주가 되는데 도와줘야지
배불러 오기 전까지만 일하고
배부르면 그만둬라
출산 전에 우리 집에 와 있다가
출산하면 산후조리원에 가.
작은며느리도 임신해서
내가 돈 준다고 했다.
같이 예약하면 되겠구나
예정일이 며칠 차이가 안 나네.
오면 두어 달 내가 몸조리 해 주마.
이후 일은 그때 가서 다시 의논하자
가서 명준이한테
명준이 너는 집에 못 온다고 전하고
막달 되면 옷 챙겨서 집에 오느라."
"네, 어머니... 감사합니다.
오빠 일에 저까지...
이 아이 잘 키우고 싶어요."
아들도 임신한 걸 아느냐 했더니
아직 말 안 했다고 하더군요.
가서 말하고 내가 한 말 전하라고 했습니다.
남편이 큰아들을 보고 싶어 하지 않았거든요.
어찌어찌 하며 잘 지내는 걸 보면
어린 나이에 며느리가 잘 하나보다 싶어
대견하게 생각했습니다.
처음 봤을 때보다 철이 들었더군요.
사는 게 고단할 텐데
아이 낳을 생각도 하는 걸 보면
외로운 게 더 싫었던 며느리라는
느낌도 있었고요.
이후 식당으로 자주 왔고
저는 반찬이며 이것저것 챙겨
임산부는 잘 먹어야 한다고
먹이고 싸서 보냈습니다.
가끔 눈물을 훔치기도 하더군요.
아이를 낳으면 부모 마음을
알게 된다고 하던 가요.
아들도 그렇게 되려나
조금은 기대를 한 것도 있습니다.
어린 며느리가 나이 차이 나는
철없는 남편과 잘 사는 걸 보고
많이 기특하면서도
안쓰러웠거든요.
외로운 게 제일 싫다는 며느리였죠.
아버지가 재혼하면서
새엄마가 불편했고
친엄마는 본 적이 없어
모른다고 했습니다.
며느리 나이 7살 때더군요.
또 그 처지가 불쌍해 내 며느리니
잘해줘야지 생각했고요.
며느리는 막 달에
우리 집에 와서 지내다가
손자를 낳았습니다.
작은며느리는
며칠 앞서 손자를 낳았고요.
손녀가 한 명이라도
나왔으면 하고 바랐는데
두 며느리가 손자를 낳았습니다.
그래 아들 낳았으니
다음에 딸 낳아라 했지요.
남편은 한꺼번에 두 손자가 생기니
입이 귀에 걸려서
매일 웃고 있었습니다.
큰아들 이제 집에 왕래 해도
괜찮지 않겠느냐 했더니
취업도 안 하는 놈을
왜 받아 주느냐고
며느리 고생 시키는
아들 안 보고 싶다고
여전히 못 오게 했습니다.
병원에는 왔더군요.
취업 안 할 거냐? 물어봤죠.
회사에 갈 자신이 없다고 하는데
그게 얼마나 얄밉고 못나 보이던지
이제 아들도 태어났는데
정신 차려야 하는 거 아니냐.
제발 많이 못 벌더라도
취업이라도 해라 했지만
아들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네요.
언제까지 여자가 버는 돈으로
먹고 살 거냐고 내 아들이지만
너무 싫다고 해버렸습니다.
취업 못하는 아들 마음도 이해하지만
간단한 알바라도 해야지요.
어찌 저러고 사는지
너무 꼴 보기 싫었습니다.
며느리 몸조리 두 달 해줬고
손자 보는 재미로
시간 가는 줄 몰랐네요.
남편이 손자와 지내다 보니
보내기 싫어서 같이 살았으면
하는 눈치였고요.
그때 살짝 물어봤죠.
이 참에 데리고 살자고요.
그랬더니 며느리와 손자는
같이 살아도 되지만 아들은
절대로 안된다고 하더군요.
그럼 집안 개판 되고
또 돈 때문에 다투게
될 거라고 하면서 말이죠.
며느리가 그 말을 듣고
그럼 자신은 아들과 여기서
살아도 되냐고 묻길래
남편이 얼른 그럴 테냐?
여기서 살림하면 월급도 주마 하더니
그놈한테 가서 고생하지 말고
여기서 살아라 하는데
미우면서도 오죽하면 저럴까 싶어
이해도 되었습니다.
며느리는 처음엔
오빠가 걱정되긴 해요 하면서도
어린 아들이 걱정인지
같이 살겠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아들한테 전화를 걸어
안 가겠다고 했고요.
"오빠, 미안해.
나 여기서 살아도 된다고 하셨어.
우리 아들 생각해서 여기서 살래.
오빠는 애도 안 봐줄 것이고
난 그럼 힘들 거야.
어머니가 너무 잘해 주셔서.
난 여기가 좋아
오빠 밥 잘 챙겨 먹고 잘 지내.
취업하면 여기 와도 된다고 하셨으니까
편의점 알바라도 알아봐.
그것도 오빠는 힘들겠지?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아.
우리도 이제 부모야
그러니까 제대로 살아야지.
난 우리 애기 생각해서
잘 살고 싶어....
오빠 취직해.
그리고 여기 와서 같이 살자."
아들보다 더 철이든 큰며느리는
아들의 마음 어디 쯤에 있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제발 제 아들이 며느리와 함께
자식을 키우며 잘 살길
간절하게 바라기 시작했죠.
어쩌면 착한 며느리 덕분에
제 큰아들도 달라지지 않을까
자식을 보면서 우리 마음도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
기대를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아들은 집으로
오지 않았습니다.
며느리가 많이 실망했지만
금방 제 자리로 돌아가더군요.
한두 번 겪은 게 아니니
기대를 크게 하지 않은 것인지
그럴 줄 알았다 하고 말더군요.
우리는 손자 보는
재미로 몇 달을 보냈고,
장남 생각은 하지도 않고 지냈는데,
며느리가 전화를 받았다며
아버님 식당에 숯불 피우는 거
알바하면 안되겠느냐고
물었다는 것입니다.
진짜냐고 했죠.
그렇다고 하더군요.
제 남편한테 달려가 물어봤는데
학교 다닐 때도 싫어한 일을
뭐 한다고 하느냐 하면서
아무 기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책임감을 가지고 해야 한다고
하면서 할 수 있으면 와서 하고
식당 청소하는 것도 같이 해야
알바 시켜 준다고
말해 보라고 하더군요.
며느리는 신나하며 달려 갔고,
큰아들은 다음 날 식당으로 나왔습니다.
알바 하겠다고요.
남의 집엔 못 가지만
아버지한테 야단을 듣더라고
가족이니 낫지 않겠느냐 하는데
아버지가 더 무서울 수도 있다.
너 지금까지 집에
못 오고 있지 않느냐
그러니 각오하고 일해라 했습니다.
며느리는 너무 좋아 하더군요.
아들 말이 아이가 너무 보고 싶은데
아버지도 무섭고 취업할 생각하니
그것도 두려워서 한 생각이
아버지 식당에서 일하는 거라고 했습니다.
잘 생각했다고 했죠.
그렇게 큰아들은
우리 식당에서 알바로 시작해
지금은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주차 관리도 도와주고
틈나면 아들 보러 갔다 오고
나름 열심히 살려고 하네요.
다 며느리 덕분이고
손자 덕분인 것 같아
너무 기뻤습니다.
부모인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던 일을
자식이 태어나니 달라진 장남이
이제 철이 드는가 보다.
조금은 안심이 되었네요.
며느리 고생 안 시키고
자식 잘 키우면서
행복하게 살길 바라는 건
부모라면 누구나 하는 것이 아닐지요.
저도 부모니까 자식이
잘 살기만 바랄 뿐입니다.
저는 며느리와 지내는
시간을 좋아합니다.
저한테 하나 씩 배워 보겠다고
요리도 배우고,
바느질이 뭔지도 모르던 애가
아기 옷을 만든다고.
재봉틀도 배우는
며느리가 너무 대견해서
같이 산책도 가고 쇼핑도 가면서
즐겁게 지내고 있습니다.
행복이 뭐 별건 가요?
자식이 잘 살고 행복하면
부모로서 제일 뿌듯하고 좋죠.
철없는 큰아들이 이대로
며느리와 손자와 잘 지내기만 바랍니다.
자식이 부모 등골 빼먹고
사는 것도 좋지 않지만
부모도 자식이라고 기대고
살 생각하면 안 되는 것 같아요.
남편도 요즘은 큰아들 보는
시선이 많이 누그러졌습니다.
그래서 며느리와 손자한테
더 잘해 주는 것 같고요.
너무 예쁜 며느리죠.
우리한테 말이죠.
이대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면 좋겠습니다.
더 많이 행복하세요.
날이 차가워지고 있습니다.
늘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한 사연입니다.
멋진 인생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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