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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갓집에서 살게 됐고 회사 다니며 농사일까지 도왔는데 무료 일꾼 와서 좋다고 말하는 장모와 처제 사업을 실패하고 난 뒤, 모든 게 무너진  기분이었습니다.  본가 부모님도 형편이 넉넉지 않아서 도움을 받을 수 없었죠. 처갓집에서 함께 살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감사한 마음뿐이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저의 위치는 달라졌습니다. 시내에 취업을 했는데 출근하면서 운전사 역할을 하며 심부름까지 도맡게 되었고 때로는 무시받는 상황도 견뎌야 했습니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가족을 위한 선택이었으니까요.3년 사는 동안 장모님과 처제 운전기사  노릇을 했고  주말마다 비닐하우스  농사일을 도와야 했습니다.  월급도 없는 일꾼이었죠. 우리 식구 밥 먹여 주는 게 어디냐고 하시면서 돈은 전혀 주지  않으셨습니다.퇴근 후 저녁을  하기도 했고  주말이나 휴일엔 무조건 하우스 .. 2025. 1. 11.
달라는 만큼 생활비를 줘도 몰래 대출까지 받아서 장모와 여행 다니고 명품에 사치 부리다 빚만 진 아내 마지막이다 생각하면서 아내에게 정말로 기회를 줬습니다. 그동안의 문제를  돌아보며 다시 시작해 보자는 마음으로 노력했죠. 하지만 아내는 달라지지 않았고, 반성은커녕 노력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혼을  결심했습니다. 제가 이혼 의사를 전하자 아내는 받아들이지 못했고 시댁까지 찾아가 시어머니와 언성을 높이며 이혼하지 않겠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께서는 저의 결정을 이해하며 잘했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당신이 저질러  놓은 결과를 봐. 난 3년이란 시간 동안 기회를 줬어. 내가 돈을 벌어오면  뭐 할 건데? 장모님과 피부과에 가고 여행 다니고 명품 가방이나 사면서 카드 할부에 사채 빚까지 다 갚아 주느라 돈도 없어. 장모님도 너무 하시네.  딸이 이렇게 살면  못하게 말리고 알뜰하게  .. 2025. 1. 10.
부모님 이혼으로 할머니가 누나와 저를 키워주셨는데 돌아가시자 15년 만에 찾아와 재산만 챙기는 아버지 어릴 적 부모님이  이혼하셨습니다. 누나와 저는 어느 날 갑자기 할머니 집에 맡겨졌죠. 어린 마음에 버림 받았다는 생각에 많이도 울었습니다.부모님 없이 살아간다는 건 상상할 수 없었고, 세상이 무너진 듯한  기분이었어요. 하지만 할머니는 저희를 따뜻하게 품어 주셨습니다.행동으로 사랑을  보여 주셨죠. 직접 손수 만든 음식, 밤마다 머리를  쓰다듬으며 해주신 이야기들, 할머니 덕분에 외로움 대신  사랑을 배웠고, 원망 대신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지금의 저는 모두  할머니 덕분입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남겨진 재산이 조금 있었는데 아파트와 식당 그리고  현금 3억이었죠.15년 만에 장례식에 온 두 분은 우리의 안부는 묻지 않고 재산에만 관심을 두었습니다."할머니 재산이 다 얼마냐? .. 2025. 1. 9.
(좋은글) 익숙함에 머물지 말고 변화하라 변화는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변화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합니다. 당신이 지금 익숙함에  머무른다면, 더 나은  내일은 오지 않습니다. 모든 위대한 성취는  결코 편안함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두려움을 넘어설 때,  비로소 진정한 자신을  마주하게 됩니다. 당신이 변화를  받아들이는 순간,  세상도 당신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 줍니다. 어제와 똑같은 선택은  오늘도 어제와 같은  결과를 가져올 뿐입니다. 어려움을 두려워 말고,  그 안에서 성장의  가능성을 찾으세요. 변화는 고통스럽지만,  그 끝은 한층 더  강해 진 당신입니다. 이제 결단하세요. 인생은 당신 스스로가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오늘도 무탈하세요.  긍정적인 생각으로 행운을 불러들이세요.     글내리는밤Life writing... 2025. 1. 8.
남자친구가 저한테 가난한데 무슨 문화 생활이냐 한우는 먹어봤느냐 우리 부모님을 무시하길래 헤어졌는데 몇 년 후 다시 찾아와 한 행동이... 저희 부모님은 정말  힘든 삶을 살아오셨습니다. 아버지는 세탁소를 운영하시고  어머니는 식당을 하시며 저와 남동생이 부족함 없이  자라도록 최선을 다하셨죠.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의  그 노력과 희생을 알았기에 저희 남매는 무엇보다 공부에 매진하며  부모님의 뜻을 따르며 살아왔습니다. 저는 법대를 졸업하고 변호사가 되었고,  남동생은 의대를 나와 의사가 되었습니다. 이제 저희가 자리 잡고 나서는  부모님께 조금이 나마 보답하고자  용돈을 드리고 여행을 보내드리기도 하며 “이제 고생은 그만하시라”는  말을 자주 전했습니다. 부모님 덕분에 지금의 저희가  있음을 항상 잊지 않습니다. 저는 사업하는 남자친구를 만나게 되었고  남동생은 같은 의사인  여자친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남동생이 먼저 결혼 준비를 했고 .. 2025. 1. 8.
시동생이 췌장암으로 죽은 후 혼자 힘들게 아이 키우는 동서한테 생활비 보냈더니 몰래 빼앗아 간 시아버지 시동생은 젊은 나이에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남겨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동서는 혼자 어린아이를 키우며 전셋집에서 힘겹게 살고 있었기에 제가 매달 백만 원의 생활비를 보탰습니다. 그런데 3년이 지난 어느 날 동서가 눈물로 저를 찾아왔습니다. 도저히 못 견디겠다며 얘기한 내용은 충격적이었어요.시동생이 살아 있을 때 생활비를 줬으니 계속 달라고 했고 동서가 어렵다 하니 제가 보내는 돈을 달라고 하셨다네요. 최근에는 도박으로 돈이 필요하다며 500만 원을 요구하셨답니다."형님 저 너무 힘들어서 왔어요. 아버님이 매달 형님이 주시는 돈  내놓으라고 하셔서  드렸고 이번엔 오백만  원을 해달라고 하시네요.""왜 진작 말 안 했어? 어떻게 아버님이.."남편과 제가 시댁으로 달려갔죠. 아버님은 당연하다는 듯 .. 2025.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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