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들과 작은 아들
어머니가 아버지보다
자식에 대해 더 깊은
애정을 갖는 이유는
어머니는 자식을 낳을 때의
고통을 겪기 때문에
자식이란 절대적으로
자기 것이라는 마음이
아버지 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저는 아들 둘을 낳았습니다.
후회의 눈물만 흘리고 살다가
지금에야 웃고 있네요.
자식 농사가 인생
최고의 숙제이고 기쁨이라는데,
큰아들 농사는 실패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두 아들은 어릴 때는
여느 집 자식처럼
평범하게 잘 지냈습니다.
작은 아들이 고등학교 입학 해
공부에 관심을 가졌고,
대학을 법대로 가면서
두 아들의 인생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작은 아들이 법대에 간다고
할 때부터 기쁨을 감추지 못했고,
대학 졸업 후 변호사가 되었을 땐
동네에서 술이란 술은 다 사고 다녔네요.
그런 동생을 보면서 큰아들은
나도 잘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게 아니라
비교당한다고 생각했는지
어긋나기 시작했죠.
친구들과 어울려 술 마시고
행패 부려서 합의금도
여러 번 물어줬고
대학은 가지도 않았으며,
사회에 나가 만난 사람들도 다
사기꾼에 감방이나 드나드는
사람 들이었네요.
두 아들은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인데
제가 편을 나눠 좋다 싫다
내색했겠습니까? 안 했습니다.
작은 아들이 변호사가 되었다고 해도
크게 기뻐하지 못했고
작은 아들이 같은 직업을
가진 며느리를 데려와 결혼을 해도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큰아들은 공장에서 만난 여자와
사귀다가 임신을 해 결혼하겠다고
인사를 왔더군요.
저 같은 여자를 만났나
그런 생각으로 처음 인사 오는
큰며느리를 봤는데, 어찌 그리 곱고
이쁜 사람이 던지요.
착하고 생각도 깊고
바른 사람이었습니다.
잘해줘서 진심으로 챙겨줘서
만난 거라고 하더군요.
나쁜 행동도 많이 하지만
열심히 잘해 보려고
노력하는 모습에서
언젠가 달라지지 않겠느냐며,
며느리를 큰아들의 깊은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었네요.
작은아들한테 해 준 것처럼 똑같이
집을 사서 결혼을 시켰습니다.
그렇게 잘 살 줄 알았죠.
큰며느리가 아들을 낳았고
살림도 잘하고 시댁 일이라면
발 벗고 찾아올 만큼 잘 지냈기에
큰아들도 그런 며느리를 보면서
잘 살 줄 알았는데,
동생이 변호사로 잘 사는 걸 보면서
더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 아니라,
한탕 크게 하고 다신 하지 말아야지
오히려 나쁜 마음을 먹었더군요.
큰아들은 사기꾼 사람들과 만나
사기치고 다니다가 잡혀 3년 실형을 받고
교도소에 가고 말았네요.
거기다 대들었다고 큰며느리를
때려 며느리가 입원을 했고요.
큰며느리 친정에서 난리가 났고
이혼하라고 저를 찾아와
몹쓸 놈이라고 자식을 어떻게 키워서
여자를 때리느냐,
막말을 며칠을 하고 가셨습니다.
다 제 잘못 같아 욕먹었습니다.
큰며느리한테 이혼해라
손주랑 먹고살 걱정 없이 해줄 테니,
가고 싶은 곳에 가거라 했는데
이혼 안 하겠다고 하더군요.
며느리가 갑자기 대들어서
그랬던 거라고 하면서
지금까지 한 번도 주먹질은
안 한 사람이고 오히려 편을 들더니
옥바라지하면서 기다리겠다고 했습니다.
자신은 남편을 믿는다고
엄마인 저보다 남편을
더 챙기고 있었습니다.
큰며느리의 3년 옥바라지
덕분인지 아들은 정신을 차린 듯했고,
나와서 무릎 꿇고 큰며느리와
부모인 우리에게 빌더군요.
잘 살겠다고 하면서 말이죠.
큰아들은 그런 의미로
우리가 같이 살아도 되겠느냐 했고,
큰며느리도 그게 좋겠다고
해서 합가를 했습니다.
작은 아들 부부도 와서
큰아들을 챙겼고,
앞으로 잘 지내보자 형제가
가깝게 지내기도 했습니다.
1년은 조용하게 살았죠.
공장에도 열심히 출근하고
우리와 여행도 다니면서
큰아들은 평온해 보였습니다.
이젠 안심해도 되겠지
마음을 놓은 어느 날 경찰의
전화를 받게 됐습니다.
병원이라고 해서 너무 놀라
큰며느리와 달려갔네요.
어울렸던 사기꾼 놈들 중에
한 놈이 계획한 일에 동참하지 않는다고,
술 한잔 마시고 싸우다가
건물에서 밀어버렸는데.
큰아들이 떨어져 다쳤고
수술실에 들어갔다고 하면서
의사가 왔고, 간호사에게
동의서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저는 주저앉고 말았지요.
다리에 힘이 풀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거든요.
큰아들의 인생은 왜 이리 꼬여서
잘 살아 보겠다고 해도
하늘이 도와주지 않는 걸까
원망도 되었고요.
큰며느리는 담담하더군요.
수술이 잘 되면 되는 거 아니냐,
죽은 거 아니라고 하니
어머니 그렇게 슬퍼하지 마세요.
재형이 아빠 다 괜찮을 거라고
저를 위로까지 했습니다.
그런 며느리를 보면서
엄마인 내가 강해져야지,
약해지면 안 되겠구나 다짐을 했고요.
큰아들 수술은 잘 됐고,
왼발을 절룩이고 제대로
못 움직이게 돼 절망도 했지만
재활을 하면 회복할
가능성도 있다고 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위로가 되었지요.
손주는 제가 돌봐 주기로 했고,
큰며느리는 간병을 했습니다.
병원 갈 때마다 주변 사람들이
하는 말이 저런 며느리를 두고
왜 사고를 쳤느냐 할 정도로
큰며느리는 지극정성 잘하더군요.
부모인 저보다 더 낫다 싶어 늘 미안했네요.
큰아들은 1년 2개월 만에
병원에서 재활까지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다리에 철심을 박아
걷는 것이 힘이 들었는지
가끔 짜증을 내긴 했지만
목숨 산 게 어디냐며 아들 보는
재미로 살더군요.
이후 큰아들은 예전의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고,
아버지가 운영하는 동대문 동매상에
출근해 일을 돕고 있습니다.
부자간에 서먹해하더니 잘 풀어갔고
큰아들의 노력에 제 남편은 마음을 열었습니다.
믿어보겠다고 했고요.
큰아들은 정말 많이 노력을 했습니다.
남편이 일을 물려주겠다고
열심히 가르치고 있고요.
부자가 가끔 한잔하고 들어오면
그게 또 좋아 보이네요.
저는 큰며느리를 업고 살고
싶을 만큼 큰며느리가 하고 싶어
하는 건 다 해주며 살고 있습니다.
시부모 모시고 살면서
힘든 것도 많을 텐데,
아무 불평 없이 잘 사는 걸 보면
너무 고맙네요.
제 아들이 큰며느리를 만나지 않았다
면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생각해 보는데,
끔찍한 생각 밖에 안 듭니다.
최근에 큰며느리 친정 집을
좋은 아파트로 이사하게 했습니다.
합가 하면서 판 아들 집 돈에
남편이 더 보태줘서,
우리 아파트 근처 40평 대
좋은 곳에서 사시게 해드렸더니,
며느리가 몇 날 며칠을 고맙다고 울었네요.
제가 더 고맙다고 내 아들과
살아줘서 고맙다고 해도 말이지요.
초등학교에 입학한 손자가
공부를 얼마나 잘하는지
반에서 늘 일등이라고 합니다.
큰아들이 변호사 시켜야겠다고 하니까
손자는 의사가 되겠다고 하네요.
의사가 되어 아빠 발 고쳐 주고 싶다고 하니
의사가 될 것 같습니다.
같은 배에서 나와도
자식이 각각이라고 하더니
두 아들의 인생은 늘 극과 극이었는데,
지금은 나름의 인생을 살면서
행복을 찾아가고 있네요.
아버지 생신에 다 같이 해외여행 가자며
작은 아들이 예약을 했다고 해서,
우리 가족 여행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힘든 시간을 이겨내게 해 준
큰며느리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이 글 마무리하겠습니다.
부모라고 다 같은 부모 아니고
자식이라고 다 같은 자식이 아니라고
하는 말이 와닿아,
제가 부모 노릇은 하고 있는 건가
반성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큰며느리를 보니 사랑으로 믿어주면
그 마음을 언젠가는 알아주는 것 같네요.
고맙다 며늘아. 사랑한다.
여러분 많이 사랑하며 사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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