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 모시고 간병 8년
안녕하세요.
청주에 사는
'송연옥'이라고 합니다.
저는 시어머니 간병을
8년을 했습니다.
출근해서 종일 모신 건 아니지만,
낮 시간엔 간병인이 오셔서 돌봐 주셨고,
퇴근 이후 다음 날 출근 시간까지
그리고 주말과 휴일은 종일 어머니
간병으로 8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허리를 다치면서
어머니를 이제 요양원에
모시자고 했다가
남편과 이혼 소송했고
이혼했습니다.
그래서 이 사연 함께 해 봅니다.
너무 분하고 억울하고
화가 나네요.
저와 남편은 한 모임에서 만나
사귀게 되었습니다.
같은 취미를 가진 모임이었는데
그 모임은 주말에 모이는
영화 모임이었습니다.
한 때 같은 취미 모임이 유행했고
지금도 동우회가 활성화
되어 있는 것 같은데,
저도 그런 모임에서 만났습니다.
유일한 모임이었고
사람들과 주말에 영화를 보고
감상평을 함께 모여 한잔하면서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하게 지내게 되었습니다.
같은 방향이라 늘 집에
데려다 주겠다며
남편이 차로 데려다 줘서
저는 대중교통으로
나오기 시작했고요.
모임에서도 우리가 본격적으로
사귀게 되자 다 알게 되었죠.
축하해 주었고 남편과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남편과 5년 넘게 사귀었고
결혼 말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우린 양가 인사를 드린 후
결혼을 허락 받았습니다.
남편 직업도 안정적이었고
저 역시 공무원이다 보니 시댁에서
굉장히 반겨주더군요.
결혼해도 일할 수 있겠다고
하시면서 오래 다녀라 하시더군요.
친정아버지도 공무원으로
계시다 퇴직하셔서
집 걱정도 없었죠.
신혼집을 마련해 주셔서
결혼도 우리는 아무 걱정 없이
시작한 것 같습니다.
남편은 시댁에 참 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시어머니가 우리 아들
우리 아들 노래를 부르셨고,
매일 전화하셔서 안부 한다
안부 해라 이러실 정도로
아들을 챙기신 분이세요.
남편도 그랬고요.
장남은 아닙니다.
위로 두 명의 누나와 한 명의
형이 있는 막내였습니다.
그래서 더 귀여움을 독차지 했는지
모르겠지만 유난히 시어머니와
가깝게 지낸 남편이었죠.
시아버지는 시장에서 과일과
야채를 파는 장사를 하셨습니다.
시어머니는 바쁠 땐 가서
도와 드리지만 평소 주부로
지내오신 분이셨고요.
시간이 많은 분이셔서
우리가 결혼한 이후 허구한 날 오셨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출근하고 없는 시간에도
비밀번호 누르시고 아파트에
오셔서 놀다 가신 분이셨습니다.
아들 빨래만 쏙 해놓고 가셨고,
아들 밥과 반찬만
쏙 해놓고 가셨던 분이세요
퇴근해서 와 보면 식탁 위에
아들 반찬만 만들어서 덮어두고
가시는 걸 매일 보니까
짜증만 나더군요.
아들 며느리 없는 집에 수시로 와서
다 살펴보고 가신다는 것이
부담스럽고 싫었습니다.
그래서 솔직하게 기분 나쁘다고
남편한테 몇 번 말했는데
엄마가 아들 걱정하는 건
당연하다며 귀찮아했습니다.
더는 말을 꺼낼 수도 없었죠.
그때부터 남편과 거리가
생긴 것 같네요.
그런 남자인 줄 몰랐거든요.
참 다정했는데 어느 순간 1순위가
어머니가 되고 저는 뒤로
밀려 나 있었습니다.
결혼 후에도 주말 저녁
영화 모임에 나갔는데,
남편은 가지 않더군요.
저만 혼자 갔습니다.
저한테 가지 말라고 하는 거
유일한 취미라고 말하고
계속 나갔고요.
싫어하는 내색을 보여도
저도 무시하고 가 버렸네요.
남편은 새로운 모임에 가더군요.
바로 헬스장에 가면서 헬스 인의
모임인가에서 모여 운동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는다고 하면서
많은 남자들과 운동하는
여자들과 어울리면서 사진 촬영한 것도
스스럼없이 보여줬습니다.
멋진 여자들 많죠.
그러나 질투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부부고 시어머니 말이라면
뭐든 다 믿고 듣는 사람이라
어머니가 바람피우는 건
용납 못하시는 분이셔서,
늘 하면 안되는 일에 대해
세뇌를 시키고 계셨거든요.
아버님이 한번 시장에 오는
단골손님과 바람을 피워
어머니가 다 엎어버렸다는 걸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남편도 바람피우는 일은 없을 거라고
늘 말했었고요.
안심한다기 보다 사실 잘생긴
얼굴은 아니라서 별로 긴장하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끝내 그 말은 거짓이 되어버렸고
바람을 피워 이혼하는 사유 중에
하나가 되기도 했지만 말이죠.
우리가 결혼하고 2년 뒤 어머니는
겨울에 외출하셨다가
커피숍에서 쓰러지셨고
응급실에 가셨지만,
뇌출혈로 수술 후 회복하시기 까지
한동안 고생을 하셨습니다.
아무리 가볍다고 하지만
한번 쓰러지면 조심해야 하는 거라서
재활 치료부터 많이 신경 썼습니다.
병원에서 퇴원 후 시댁에 계셨지만,
간병인이 오는 건 낮 시간이었고
밤엔 아버님이 돌봐야 해서
다음 날 장사에 지장이 생기니
두 시누이와 장남한테 방법을
찾아봐라 했는데,
그 방법이 제가 되어버렸네요.
두 시누이도 일하니 어렵고
아이들도 있어 안된다고 했고,
아주버님은 형님과 삼겹살 집을
운영 중이라 시간 낼 수 없다고
안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당첨된 사람이 남편이었고
제가 된 것이었죠.
처음엔 회사 다니면서
어떻게 간병을 하느냐
못한다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님도 막내와 있고
싶다고 간절하게 말씀 하셔서
어쩔 수 없이 모셔왔네요.
남편이 해달라는 거 다 해줄 테니
어머니 건강해 지실 때까지 모시자고요.
회복이 되어 계시지 않느냐
설득을 하더라고요.
누워 계시는 분이면 끝까지
거절했을 텐데,
재활 치료하시면서 조금씩 움직이고
혼자 식사도 하실 수 있는 상태라
낮엔 간병인을 오시게 하고 저녁에
제가 어머니를 간병하기로 했죠.
시댁으로 가시던 간병인이
우리 집으로 계속 오셨고
저는 퇴근 후와 주말과 휴일에
어머니를 간병했습니다.
그렇게 긴 간병의 시작은
8년이 되어버렸죠.
7년에서 8년이 되던 해에
저는 어머니 간병으로 지쳤고,
어머니 운동을 시켜 드려야 해서
모시고 잠깐 나가서 산책하던 중에
삐끗하면서 허리가 아파 참지를 못해
병원으로 갔는데,
허리 디스크였습니다.
너무 무리해서 허리가 좋지 않았죠.
젊은 나이에 허리 디스크라니 참...
휴가를 내고 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했고, 퇴원 후
친정에서 잠시 지냈습니다.
재발할 수 있으니 무리하지 말고
쉬라는 의사 말에 남편에게
시어머니를 부탁하고
저는 친정에서 한 달을 지냈습니다.
남편이 쉬는 저에게 매일 전화해서
언제 오느냐 퇴근해서 엄마 케어하기
힘들다며 죽겠다고 저를 찾더군요.
"난 그 짓을 8년 가까이 했어.
당신 엄마야! 내 엄마 아니라고!
당신 그동안 단 한번도
어머니 간병한 적 없잖아.
퇴근하면 피곤하다고 자버리고,
아침 일찍 나가버리고.
주말에도 모임에
술 자리에 다 갔잖아.
난 모임도 포기했고
개인적인 시간 한번도 못 냈어.
허리도 어머니 간병으로
무리가 와서 아픈 거라고 하잖아.
당분간 아무것도 하면 안된다고
의사가 조심하라고 했어.
무리하다 다시 아프면
재활하는데 고생해야 한대.
내가 허리도 못 쓰고
지팡이 짚고 다니는 거 보고 싶니?
그럼 당신은 나 버릴 거잖아!
당신 엄마도 안 챙기는
남자가 나를 챙기겠니?
어머니 간병하는 거
나 이제 못 할 것 같아.
허리가 너무 안 좋대.
그러니까 아버님께 가서 다시 의논해.
요양원에 모시던가 아니면
다른 자식들이 모시라고 해.
며느리인 내가 8년 가까이 모셨으면
할만큼 했다고 생각해.
내가 고생하는 동안 당신은
할 짓 못할 짓 다 하고 다녔고,
나는 친정에 오는 것도 못했어.
8년 만에 처음 왔다고 알아?
이젠 어머니 모시는 거 거절이야.
가서 남매들이 의논해서 정해.
나 어머니 가시면 집으로 갈 거야."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엄마 모실 사람이 누가 있어?
누나들은 결혼해서
시댁 눈치 봐야 하고,
형과 형수는 장사하는데
어떻게 모셔?
우리 밖에 없어.
그동안 엄마 잘 모셔 놓고 왜 이래?
내 엄마야! 우리 엄마
요양원에 보내는 건 못 해.
그렇게 알아!
조금 더 쉬고 집에 와.
며칠은 기다려 줄게.
데리러 갈 거니까
기다리고 있어."
"그래 당신 엄마야!
내 엄마 아니잖아?
앞으로 당신이 모셔.
난 이제 못해.
다시 간병하라고 하면
돌아갈 생각 없어.
당신이야 말로 생각
잘 해야 할 거야.
왜 남인 나한테 자식이
넷이나 되는데 나를 부려 먹니?
시어머니라 참고 8년 했으면
아무도 나 욕 못해.
오히려 어머니 모시지 않은
당신 형제가 욕 먹겠지.
나 안 돌아가.
기다리지 마."
"안 돌아와?
이혼이라도 할 생각이니?
니가?"
"왜 내가 못할 것 같아?
시어머니 간병 몇 년이면
있던 정도 떨어져 나가.
당신과 내가 뭐 깊은 사랑을 했다고
못 헤어질 것 같니?
당신 하는 거 보니까
정도 다 떨어졌고,
미운 마음만 더 생겨.
갈 생각 없으니까 이혼 안하고
싶으면 어머니 모시는 거 해결해.
아니 어쩌면 어머니 모시는 거
해결해도 내가 가고 싶지 않네.
우리 떨어져 지내면서
생각 좀 해 보자."
이후 저는 남편의 전화도
문자도 받지 않았습니다.
내버려뒀죠.
휴가가 끝나고 출근하던 날
지인에게 들은 말이 있어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거든요.
남편과 저를 다 아는 지인이
모임에서 남편을 만났는데,
거기 한 여자와 사귀고
있다고 했습니다.
다 알게 된 건 1년 정도 됐는데,
가깝게 지내는 줄 알았지만
사귀는 건 생각 못했다고 하면서,
두 사람이 호텔이며 모텔이며
여행도 간 사실을 다 말해줬습니다.
모임에서 이미 소문이
났다고 했고요.
다른 사람들도 안다고 했습니다.
추측이 아니라 다 봤다고요.
여러 번 호텔에서 지내는 것도 봤다고
하면서 저한테 알아 보라고 하더군요.
그동안 남편이 모임에 꼭 참석했고
출장이다 뭐다 하면서 가는 것도
그런 일이 잘 없던 사람인데
새삼스럽게 무슨 출장이냐 물었더니,
회사 일이 바빠 어쩔 수 없다고 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자기 엄마 간병하는 아내를 두고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니
어이가 없었네요.
확인이 필요했고
저는 친정에서 지내면서
흥신소를 통해
남편이 헬스장에서 같이
운동하는 유부녀와 바람피우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서로 출근해서 시간을
정해놓고 만나거나,
퇴근 후에 만나거나
주말 모임에 참석했다가
호텔에 가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더군요.
제가 증거를 모으는 동안
남편은 친정에 찾아와
제 짐 가방을 챙기며 가자고 해서
친정 부모님과 한바탕 하기도 했네요.
"이보게 자네! 어찌 이러는가?
내 딸이 아프다고 하는데,
자네 어머니 모시라고
아픈 사람을 강제로
데려 가려고 하느냔 말이야!
아주 몹쓸 놈이구먼.
자네 어머니가 우선인가?
가서 자네 형제들한테 말하게.
여기 와서 이럴 시간에 말이지.
어디 귀한 내 딸을 8년을
시어머니 간병을 시키고
자네는 놀러 다니고,
다른 자식들은 나 몰라라 하나?
간병비도 시아버지가 반 보태고
나머지는 두 사람이 냈다면서?
그게 말이 돼?
자네 그렇게 안 봤는데
아주 인간 이하인 사람일세.
얼른 가게. 다신 오지 말고!
다신 오지 말고!
우린 딸이 그렇게 사는 줄도 모르고
잘 사는 줄 알았더니,
그동안 바쁘다고 하면서
친정에 못 온 이유가 다 있었어.
자네가 사람인가?"
"장인 어른 그건 잘못
알고 계신 겁니다.
집사람이 안 모신다고 했으면
저도 다른 방법을 찾았을 겁니다.
당신이 말씀 드려. 맞잖아.
당신이 모시겠다고 했잖아."
"자식들이 다 안 모신다고 하고,
당신은 막내지만 어머니
모셔야겠다고 하고,
어머니도 당신과
지내겠다고 하시는데,
모시고 온 당신을 보면서
어떻게 거절해?
우리 부모님께 잘 하겠지
생각해서 모셨더니 이건 뭐...
8년 동안 친정에 오는 것도
할 수가 없었으니
난 뭐하면서 산 거야?
당신 때문에 한창 빛나야 할
시기가 난 어머니 간병으로 보냈어.
후회하느냐 물으면 후회해.
그러니 돌아 가!"
남편은 친정 아버지 호통과
제 눈물에 그냥 돌아갔습니다.
서운함과 아주 분해하는
모습으로 말이죠.
미안함은 전혀 없었습니다.
당연하다는 말을
남기고 가더군요.
시어머니 모시는 게
어떻게 당연한 가요?
자식이 넷이나 되면 뭐하나요.
아무도 안 모시는 것을요.
이후 저는 남편이 바람피운
증거를 더 모았고,
친정 아버지께 부탁 드려
친구 분의 아들이 변호사인데,
그 분께 이혼 소송을 의뢰했습니다.
협의이혼 절대로 안 해줄
사람이란 걸 아니까
편하게 이혼 소송했습니다.
얼마 뒤 소장을 받았는지
연락을 했더군요.
왜냐하면 상간녀
소송도 같이 했거든요.
그 여자가 난리를 피웠는지
여자는 봐 주라고 하면서
저한테 찾아와 만나자고 해서
간 카페에서 무릎까지
꿇고 빌기 시작했습니다.
어이가 없었네요.
제 걱정보다 그 여자 걱정을 더 하고
있는 모습에서 화가 났습니다.
"왜? 이혼하면 더 좋은 거 아닌가?
그 여자도 이혼하면 둘이 살아.
그럼 되겠네. 뭐가 문제야?"
"내가 그 여자 만나는 거
어떻게 알았어?
그래서 친정에 가서
안 돌아 온다고 한 거야? 그래?"
"그런 거 아니야.
어머니 간병으로
아픈 것도 화가 났지만
이혼을 생각하던 중에
당신이 바람피우는 걸 알게 됐어.
그래.... 집에 오면
아픈 엄마에 환자 같은
아내 모습에... 싫었겠지.
이해해. 그런데 당신 엄마
간병하는 나는 무슨 죄야?
며느리면 다 해야 해?
당신 그러다 사람들한테 돌 맞아.
누가 그렇게 살아?
난 당신이 효도하는 모습이 좋았고,
나한테 그리고 친정에 잘하겠지
생각해서 몇 년만 재활 도와 드리자
생각해서 모신 거야.
모시는 동안 나 한번도
힘들다 안 모신다 안 했어.
허리 수술하면서
못 모시겠다고 했지.
그런데 봐. 내가 안 모신다고 한 이후
어머니 어디에 계셔?
요양원에 가셨잖아.
자식이 넷이면 뭐할 건데?
며느리인 나보다 못한데 말이야.
절대로 우리 엄마 요양원에
못 모신다고 한 아들은 어디에 갔어?
내가 안 모시면 모실 사람도 없거니와,
바람피우는데 지장 있으니까
요양원 보내는 거에 동참했겠지.
당신이 그러고도 효자에 아들에
우리 엄마 어쩌고 하던 아들 맞니?
인면수심이야.
무섭다 정말.
이혼은 당연한 거고,
당신 보고 싶지 않으니까
쉽게 가자."
"이해한다고 하면서 왜 이혼해?
내가 당신 얼마나
사랑하는데 이혼이야?
난 절대 이혼 못해.
답답하고 허전해서
만난 것뿐이야.
당신은 매일 엄마 간병으로
피곤해 하고,
엄마는 아픈 몸으로도
나한테 해달라고 하는 것만
많아서 싫었어.
엄마 모시고 온 거
한 달 만에 후회했지만,
아무도 안 모신다고 하는데,
당신은 열심히 간병하고 있고.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어.
엄마가 좋아 지시면
다시 가실 거니까
그동안 만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아지지도 더 나빠지지도
않는 상태에 가족은 아무도 안 오니까
집에 오는 게 점점 재미가 없고,
당신을 보는 것도 지쳐갔어.
그래서 운동하다 만난
그 여자와 스트레스를 푼 거야.
그 여자도 남편과
시댁 문제로 안 좋았어.
서로 대화하면서 공감하게 됐고
가끔 만나 서로에게
위로가 되자고 했지.
미안하다...
그러면 안되는 거였지만.
돌이킬 수가 없었어.
한번만 봐 주면 안될까?
그 여자와 헤어지려고
하던 중이었어.
그 여자가 이사한다고 해서
그만 만나기로 했단 말이야.
소장이 가는 바람에 남편이
알게 되어 그 집도 전쟁터래.
제발 당신이 한번만 용서 해 주라."
"난 이제 천사가 아니야.
당신은 착한 나를 이용했어.
그 여자는 이미 없어.
살다 보니 나도 변하더라.
당신이 이렇게 만든 거지만 말이야.
내 인생도 소중해.
당신 부모라 모신 거야.
당신은 부모를 버렸지만...
어머니도 참 안된 분이야.
며느리한테 더운 밥이라도
얻어 먹을 땐 행복하셨을 텐데.
자식 넷이 다 버렸으니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
고맙다는 말은 없었지만
미안하다고는 하시더라.
미안하다 며늘아.
내가 낳은 자식들은 안 모시는데
남인 네가 모신다고 해서 놀랐지만.
아들과 같이 산다는 생각에
그냥 왔다고 하시면서
미안하다고 하셨어.
그것도 마지막에 내가 허리 수술
하러 가기 전에 하셨어.
아픈 게 어머니 탓인 걸
아신 거지.
어머니 목욕 시켜 드리는 게
정말 힘들고 지치는 일이었거든.
땀이 비 오듯이 흘렀고
어머니 씻겨 드리고 나면
아무 것도 못할 만큼 힘이 없었어.
그런 나를 단 한번도
당신은 도와 주지 않았어.
주말에 어머니 목욕 한번만
도와 달라고 했다가
오히려 욕 먹었지.
내가 할 일이지 당신이
할 일이 아니라고 하면서 말이야.
어떻게 내가 할 일이라고
당연하게 말할 수가 있어?
당신 엄마인데.
어머니 그 말 듣고
우시는 것 같았어.
내 얼굴 똑바로 못 보셨지.
그거 모르잖아?
당신 그런 사람이야.
그러면서 바람을 피워?
아주 대단한 사람이네.
아내한테 자기 엄마 맡기고
나가서 즐겨? 즐겨졌어?
나와 어머니 생각 안 났어?
나면 사람이지 짐승이 아니겠지.
안 났으니 바람을 피웠고
짐승이 된 거야.
난 짐승과 안 살아.
그러니 곱게 이혼해 줘."
"당신. 무섭다.
그렇게 말하지 마...
나 이제 혼자 어떻게 하라고 이래?
난 당신이 믿음직해서
다 맡겼고 편하게 지냈는데.
당신이 없으면
난 아무 것도 못해.
제발 내가 잘 할게.
그냥 하는 말이 아니야.
내가 잘못한 거 나도 알아.
그거 이해해 주면 안될까?
진짜 정신 차리고
당신한테 잘 할게.
엄마는 요양원에 가셨으니까
간병도 안 해도 되잖아.
엄마 간병해 준 건
고맙게 생각해.
그래 당신 고생 많이 했어
아버지도 그건 잘 알고 계시고
언제 당신 데려와서 맛있는 거
사주라고 하셨어.
그러니까 당신 이러지 말고
나 용서해줘.
우리 옛날처럼 다시
잘 지내보자 응?"
"고마운 거 아는 사람이
그런 짓을 해?
나는 뭐 행복해서 어머니 간병하고
그러고 살았겠니?
친자식도 나 몰라라 하는
어머니 모시느라 힘들었어.
나 생색 안 냈잖아?
간병비도 우리가 반 보탰어.
두 누나도 아주버님과 형님도
신경 안 쓰는데
그런 어머니를 난 모셨다고!
화가 나!
내 인생 어떻게 보상할 거야?
아무 보상도 못하잖아.
당신 돈도 없잖아.
집도 친정에서 해준 집이고.
당신 가진 거 아무것도 없잖아.
나의 8년은 누가 보상해 줄 건데?
잘해 준다면서?
내가 원하는 건 다 해 준다고
한 사람이 한 달이 지나기도 전에
나를 무시하고 당신 혼자 외롭니
허전하니 하면서 밖으로 돈 거야?
바람은 내가 피워야 했던 거네.
안 그래? 힘들고 외로운
사람은 나였잖아. 나였다고! 돌아 가!
이혼은 그대로 진행할 거니까
다신 오지 마. 법대로 해줘.
더 바라는 것도 없어.
기운 다 빠졌고 허리 아파서
아무 것도 하기 싫어.
이런 나한테 조금이라도 미안한
마음이 있으면 곱게 이혼하고
다신 연락하지 마. 가 그만."
남편은 못 간다고 무릎 꿇고
앉아 애원했지만, 저는 매몰차게
일어나 먼저 카페를 나왔습니다.
이후 이혼은 소송을 통해
마무리가 되었고요.
긴 시간 아이가 없었던 게
이러려고 그랬나 생각에
한숨만 나왔고 다행이라는
안심의 한숨도 나왔습니다.
어머니가 오신 이후로
같이 잠을 잔 것도,
둘만 데이트를 한 적도 없었으니
아이가 생길 일이 없죠.
어머니가 부부니까 같이 자야지 라는
말을 딱 한번 하셨는데,
손자 보려고 그러셨나
싶은 생각은 들지만,
이후 그 말을 하신 적도 없고
늘 어머니 곁에서 자야 했기에,
어머니도 당연하게
받아 들이신 것 같습니다.
어머니가 오신 이후 남편과
저의 사이가 멀어졌다는 것도
어머니는 알고 계셨지만,
잘 지내란 말도 없으셨죠.
제가 희생하는 걸 가족들은
당연하게 여겼고
어쩌다 어머니를 보러 오는
아주버님과 형님도 과일 봉지 하나
들고 오지 않았네요.
아버님도 과일과 야채 장사를 하시면서
아무 것도 안 들고 오셨고요.
간병비 반 보태시는 걸
대단하게 생각하셨으니,
뭘 가져오는 건 하시지 않으셨겠죠.
그 돈 벌어서 다 어디에
쓰시는 지 모르겠지만,
아내를 위해 사용하는 돈인데
아깝니 대단한 돈 쓰는 것처럼
하신 것도 지나고 보니 화가 나네요.
우리는 돈도 보태고
간병까지 했으니, 바보였던 거죠.
당연한 희생은 없는데 말이죠.
시어머니가 가신 요양원에
마지막 인사를 드리러
한번 다녀왔습니다.
저를 보고 많이 반가워하시더군요.
여전히 고맙다는 말은 없으셨고
미안하다는 말은 하시더군요.
그게 고맙다는 뜻이었겠죠.
"어머니, 잘 지내세요.
저는 앞으로 못 와요.
어머니 아들과 이혼했어요.
병원에 여쭤보니까
아버님만 다녀가시고 자식들은
아무도 안 왔다고 하던데.
어머니가 자식들 어떤 사람들인지
이제 아시겠죠?
저 결혼할 당시 어머니가
자식들 자랑 엄청 하셨잖아요.
특히 막내 아들은 착하다
엄마 일이면 앞장서서 다 해 준다,
그런데 보셨죠?
저한테 어머니 간병 맡기고
밖으로만 돌았던 거요.
어머니 아들 바람피워서 이혼해요.
저한테 무심해서 이혼하려고 했지만,
한번은 기회를 줬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바람피워서
용서가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더 이혼했어요.
이제 제 인생 살려고 해요.
어머니도 건강하게
잘 지내세요."
"그 놈이 그랬어? 미안하다...
내가 내 자식을 너무 몰랐네.
한번도 안 오길래
무슨 일이 생겼나 했다.
한번은 오겠지...
엄마가 여기 있는데....
너는 잘 살어...."
더는 아무 말 안하고
그곳을 떠나왔습니다.
돌아보니 우시고
계신 것 같았습니다.
당신의 인생이 불쌍해서 우셨을까요?
아니면 자식들이 오지 않아서
우신 걸까요? 당신 인생도
참 안됐다는 생각을 했네요.
지금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직장 생활하면서 다시 모임에도
나가고 즐겁게 지내고 있어요.
친정아버지가 제주도에
펜션 한 채를 사셨는데, 손님이 없는 날엔
제가 가 있기도 합니다.
마음 비우고 앞만 보고 가려고 해요.
결혼 생각은 더 없고
남자한테 관심도 없습니다.
좋은 친구들과 잘 늙어가면 합니다.
부모님과 여행 준비를 하고 있는데
전 남편이 한번 찾아오긴 했습니다.
제주도로 부모님과 여행갈
준비하고 있다고 했더니,
잘 지내는 것 같다고 하면서
자신은 너무 힘들다고 하더군요.
무엇보다 본가로 들어갔는데
아버지 잔소리에 시달리고 있다고
하면서 나올 생각이라고 했고요.
알아서 살라고 했습니다.
관심 없다고 말이죠.
서운해 하면서 가더군요.
어머니 계신 요양원에
마지막 인사 드리고 왔는데,
아들이면 한번 찾아 뵈어라,
기다리고 계신 것 같더라 했죠.
아무 대답도 없었고 그냥 갔습니다.
이후 소식은 모릅니다.
잘 살겠죠.
행복할 수 있었는데....
그런 생각도 지워야겠죠?
제 사연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